전자공학 전공책에 심심하면 등장하는 이상적인 전압원
은 어떤 상황에도 개의치 않고 항상 동일한 전압을 공급한다. 또한, 내부 저항이 0Ω 이다. 하지만 현실에서의 전압원들은··· 그런 거 없다.
현실의 전압원들은 배터리 안에 내부적으로 저항이 하나 연결되어 있는 상태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러한 전압원들은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배터리나 어댑터, 충전기 등이다. 하지만 우리는 21세기를 살아가는 문명인이고, 피할 수 없는 배터리의 노예이니 다른 건 치워 두고 배터리에 대해 좀 더 알아보자.
리튬이온 충전지는 뛰어난 에너지 밀도 덕분에 휴대용 전자제품에 널리 사용된다. 이 글을 읽고 있다면 분명 반경 1m 안에 리튬이온 전지가 들어간 전자제품이 있다는데 남은 군생활의 10%를 걸겠다. 하지만 배터리 용량은 예전같지가 않을 것이다. 분명 샀을 때는 열 시간도 쓰고 했는데 6시간만 써도 뻗어버리는 전자제품이 한두 개가 아니다.
누가 내 배터리 썼어
배터리 수명에 영향을 미치는 건 전극의 손상이다. 그리고 전극의 손상은 내부저항의 상승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배터리의 내부저항을 측정해 보면 어느 정도의 전극 손상이 일어났는지 대충 가늠해 볼 수 있다. 한편 배터리의 초기 내부 저항은 제조 공정에서의 물리적인 크기와 화학적 특성에 의해 결정되고, 온도에 따라 달라진다.
보통 제조사에서 출고되는 배터리들은 데이터시트에 정상 범위의 내부 저항이 표시되어 있다. 삼성 SDI가 만드는 18650 전지인 INR18650-25R의 데이터시트를 보자.
배터리의 특성을 기술하는 Characteristics 항목에 아래와 같이 출고 시 배터리의 내부 저항이 있다.
측정을 교류로 해서 결과가 임피던스로 나왔는데, 18mΩ 미만이어야 정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제가 앞으로 얼마나 더 살 수 있나요?
그럼 이론은 이쯤하고 직접 배터리를 가지고 저항을 측정해 보자. 배터리의 내부 저항은 그냥 전극에 저항계를 갖다 대서는 잴 수 없다. 저항계 자체가 회로에 전압을 걸어 저항을 측정하는 원리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부 저항을 측정하려면 배터리에 부하를 하나 걸고 부하 양단 전압을 재서 계산해내야 한다.
측정 대상 배터리다. 고장난 보조배터리에서 꺼낸 18650 셀인데, 전극에 직접 납땜하고 자전거에 끼워서 비 맞고 온갖 수모를 겪었으니 상태가 좋지는 않을 것 같다. 실제로 이렇게 사용하면 안 된다.
토막 상식! 18650 배터리는 왜 이름이 18650일까?
18650은 배터리의 직경이 18mm이고 높이가 65mm이며 원통형(0)이라는 의미다.
이 외에도 14500 26650 46800 등 다양한 규격의 리튬이온 충전지 사이즈가 있다.
그럼 네모난 배터리는 1865ㅁ인가
먼저 부하가 없는 개방 상태에서의 배터리 전압 Voc를 측정한다. 3.873V 이다.
다음으로 측정에 사용할 부하 저항의 값을 잰다. 저항이 도선의 면적에도 영향을 받으므로, 부하 저항과 배터리는 충분한 접촉 면적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으로 연결해야 한다. 저항의 크기는 수십 옴 정도의 작은 저항으로 준비해야 정확도를 확보하기에 쉽다. 아니라면 카운터가 높게 찍히는 좋은 멀티미터가 필요하다. 이 저항은 정확히 10.0Ω 이다.
마지막으로 배터리에 부하 저항을 연결한 상태에서 배터리 양단 전압을 측정한다. 3.852V 이다.
이 전압을 측정할 때는 화상에 주의해야 한다. 높아야 수십 옴의 저항을 연결했기 때문에 회로에 수백mA의 전류가 흐르고 순식간에 뜨거워진다. 대충 계산해보면 전력 P = V2 / R = 1.48W 이다. 저 눈꼽만한 저항이 1.48W짜리 손난로가 된다.
저항의 크기가 온도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뜨거워지면 부하 저항의 값이 변화한다. 또한 전류를 빠르게 뽑아내 배터리의 잔량이 변화하고 전압이 떨어지므로, 최대한 연결하자마자 값을 측정해야 정확한 값을 얻을 수 있다.
이렇게 모든 측정을 마쳤으니, 이제 열심히 계산기를 뚜드릴 차례다.
배터리의 내부 저항 RInternal은 아래의 같은 공식으로 계산된다.
RLoad가 부하 저항, Voc가 개방 전압, VLoad가 부하 상태에서의 전압이다.
계산해 보면 10.0 * (3.873 - 3.852) / 3.852 = 0.0545…이므로, 내부 저항은 55mΩ 정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측정에 사용한 배터리는 같은 셀을 네 개 병렬로 묶어 사용하고 있다. 개별 배터리의 내부저항 r이 모두 같다는 가정 하에 병렬로 연결된 저항의 합성 저항 RInternal이 55mΩ이므로,
에 의해 개별 저항 r = 216mΩ 이다. 역시 썩 좋지 못한 상태임을 알 수 있다.
하란대로 하긴 했는데… 왜?
혹시나, 혹여, 설마, 배터리의 내부저항 공식이 왜 저렇게 생겼는지 궁금할 수 있으므로 공식을 한 번 유도해 보자.
글 맨 앞에서 봤던 전압원에 부하 저항을 연결해 보자. 이상적인 전압원은 부하 저항에 정확히 V = I × R에 의해 전압원의 전압과 같은 전압이 걸린다. 반면, 우리의 배터리에서 실제 저항은 내부 저항과 부하 저항의 직렬 합성 저항이다. 이 상태에서 회로에 흐르는 전류 I 는,
이다. 여기서 키르히호프의 전압 법칙이라는 이름이 이상한 친구가 등장한다.
하나의 닫힌 회로에서 전원의 전압은, 그 전원에 연결된 모든 소자에서 발생하는 전압강하의 합과 같아야 한다.
즉, 우리의 회로에서 전원 전압 Voc = VInternal + VLoad이다.
여기서 VLoad을 왼쪽으로 넘기고 VInternal을 V = I × R을 이용해 풀면,
가 된다. 여기에 우리가 아까 알아낸
을 대입하면 결론인
가 나오게 된다. 짜잔!